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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화, 실험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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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NO 편집장 (*2020, South Korea)

JONAS MEKAS (1922-2019)

필자가 실험영화에 관심을 가진 건 요나스 메카스 덕분이었다. 그는 실험 영화계에서 "Godfather" 란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실험 영화사 속의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에 한 명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실험 영화계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그는 우연히도 나에게 그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예술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어떤 도구로든 솔직하게 그릴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방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굳이 그를 직접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의 작품을 통해 깨닫고 연구하는 것이다. 창작이란, 그런 방법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실험영화는 불쾌하거나 자극적이거나 끔찍하거나 알수없거나 혹은 지루하거나 등등의 알 수 없는 묘한 기분과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실험영화와 달리 장르가 도큐멘터리에 가깝다. 게다가, 그의 실험은 현실반영적이다. 꽤 심플하지만 또한 심오하다. 실험영화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실험영화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그가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19년도 <Jonas Mekas, the Godfather of Avant-Garde Cinema | IN THE WORKS | THE SHED>의 영상을 보면, 그는 단순히 실험영화의 신이라는 수식어뿐만이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준 훌륭한 아티스트로 귀감이 되고 있다. 

 

요나스 메카스의 실험영화들은 의도가 매우 명확한 다큐멘터리 필름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극을 경험하고 우연히 영상으로 남기게 된 자료와 다른 영상을 조합한  그의 작품 "The Destruction Quartet (2006)"에서는  영상속의 그의 노래 가사 < 끔찍한 얘기>처럼,  정말 끔찍하게도 현실의 사건 사고를 동시에 상영하고 있다. 위에서 오른쪽 영상은 백남준이 살아있을 당시, 피아노를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백남준의 역사적 한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올려져 있다. <플럭서스 운동>

 

The Destruction Quartet (2006) , a four-channel video installation, showcases the destruction of September 11th, the dismantling of the Berlin Wall, a fire sculpture by Danius Kesminas, and Nam June Paik destroying a piano, respectively.It&rsquo;s easy to watch these instances of devastation&mdash;one heartbreaking, one healing, two creative&mdash;as tributes to the inextricable connection between destruction and creation. It is easier to feel this way when Mekas himself says to you (as he did to me),

 

 

그의 작품은 날것 그대로, 현실을 반영하며  그리고 그의 메시지도 작용을 한다. 위의 작품은 모두 파괴된 장면을 담고있다.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파괴를 하고 파괴를 당하고 그것이 동시에 이뤄지거나 빈번하게 이뤄지거나 어쨌든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실험영화는 우연적 상황의 현실을 인위적으로 담고 있고 만들어 간다. 메카스는 우연으로 맞닥뜨린 이 충격들을  영상에 담았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자극적인 내용은 없지만, 현실 속에 놓인 사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4개의 영상으로 동시에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요나스 메카스 사진 1
요나스 메카스 사진 2

 

요나스 메카스가 사용한 용어, 4중주

그리고 독일의 현대음악 작곡가 슈톡하우젠의 <헬리콥터 4중주> (1993)

 

 

콰르텟, Quartet 이라는 말은 흔히, 클래식 음악에서 4중주라는 뜻으로 4중주 편성의 음악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 편성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매우 전형적인 스타일의 편성이다. 메카스의 작품 속 4개의 장면 속에서 나오는 영상이 마치 악기가 되고, 그 영상 속의 사운드가 선율과 사운드를 발생시켜 음악이 되는 것과 같은 역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럼 그는 소음 음악을 도출해낸 것인가? 반면에, 슈톡하우젠은 어쿠스틱 현악기로 시끄러운 소음 안에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연주자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1993년도 작품 <헬리콥터 4중주> 역시 영상과 메카스의 4중주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포인트가 있다. 연주회의 장소가 헬리콥터안이다. 만약 영상이 없었다면, 사운드조차 관객들은 알지 못하지 않았을까. 

 

Helikopter-Streichquartett (Helicopter Quartet) - Karlheinz Stockhausen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1928-2007)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은 휴머니즘 적이고 사회 비판적 그리고 고독 등의 일상 속의 사물들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의 아이디어는 우리의 삶 속에 있었다. 우리의 삶과 연관된 것, 그것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슈톡하우젠의 헬리콥터 4중주 또한 매우 실험적이고 영상 속의 사운드를 잘 반영하는 작품이었다. 음악적 공간과 영역을 확장시킨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슈톡하우젠의 <헬리콥터 4중주>의 악보는 당연히 존재하며, 모든 테크닉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들이 그의 악보에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디테일이 모두 설명되어 있다. 슈톡하우젠의 실험음악 영상과 요나스 메카스의 차이점이 있다면, 음악은 매우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요나스 메카스가 작업하는 방법에 대해선 밑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Zuerst muss ich sagen, dass ich kein sehr nachdenklicher Mensch bin. Die Leute denken zu viel. Und sie nehmen sich zu ernst. Ich lebe ohne Plan. Mein grösste Entdeckung war zu verstehen, dass ich nichts tun muss: Alles, was ich tun muss, ist zuzulassen, dass die Dinge passieren können […] ihnen nicht im Weg stehen. Ich bin mir nicht sicher, ob ich andere Filmemacher oder Künstler beeinflusst habe. Meine Aufgabe war die einer Hebamme, die zerbrechlichen, neugeborenen Wesen hilft, die ersten Schritte in dieser Welt zu überleben. Meine Aufgabe war die eines Beschützers, der hilflose Neugeborene vor den Angriffen des Establishments schützt. Sich selbst ernst zu nehmen, sei es in der Kunst oder im Leben, ist unsinnig. Kunst oder Leben ohne Humor ist nicht lebenswert. “

 Revolver. Zeitschrift für Film, Heft 12, 2005

 

"먼저, 나는 말해야 한다. 나는 매우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은 너무 진지하다. 나는 계획 없이 산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한 이 큰 깨달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가 뭔가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그 일들이 발생될 할 수 있게.... 당신에게 방법이 놓여있지 않은 모든 것.  나는 확실하지 않다. 다른 영화 제작자 나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직업은 연약하고 갓 태어난 존재들.. 이 세상에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 조산사의 일이었습니다. 제 직업은 시설 공격으로부터 무력한 신생아를 보호하는 보호자였습니다. 예술이든 삶이든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유머 없는 예술이나 삶은 살 가치가 없습니다. "

 

동의한다. < 유머없는 예술이나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것> 그것에 동의한다.

필름 잡지 <Revolver>에서 그가 한 인터뷰 중 언급한 말이다. 

 

 

그는 그는 Andy Warhol, Nico, Allen Ginsberg, Yoko Ono, John Lennon, Salvador Dalí 및 동료 리투아니아 인 George Maciunas와 같은 예술가들과 긴밀히 협력했다. 특히, 1971 년에 Mekas의 다리는 John Lennon과 Yoko Ono의 실험 영화 Up Your Legs Forever 에 등장하기도 했다. 퍼포먼스와 실험영화는 많은 것에 있어서 맞닿아 있다. 영상에 퍼포먼스를 이용하는 필름은 너무도 많은데다가, 영상속의 인물들은 항상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나간다. 영상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디어아트라는 작업에 연결되어 있다. 미디어 아트와 실험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실험 영화는 영화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고, 미디어 아트는 미디어에 속한 매체를 통틀어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 아트는 오디오 비쥬얼이나 사운드아트등이 하위 부류에 속하고 있고, 실험영화는 독립적으로 취급이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분야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 

 

 

Up Your Legs Forever

 

Up Your Legs Forever

 

Up Your Legs Forever

 

 

실험영화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현재 아티스트들이 관객과의 소통을 하기 위한 매개체로 미디어와 설치미술과 같은 반응에 대한 해답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중 미디어를 통해  작가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험영화는 작가에게 개인적으로 새롭고 직접적이고 결과를 쉽고 빨리 도출해낼 수 있는 장점이 되는 예술 도구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21세기는 미디어에 많이 익숙한 일반 대중들에게 그리고 새로움을 쉽게 받아들이는 대중들에게  어려운 추상화나 클래식컬한 순수 미술보다는 오히려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소통을 원한다. 그렇기에,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실험영화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21세기의 관객의 수준은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 

 

 언제부터 실험영화가 이렇게 빈번하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영화의 비쥬얼이나, 기술적인 측면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영상의 퀄리티도 높아졌고, 비쥬얼이라는 장르가 생기고 프로젝트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은 확실하며,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아트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독일에서는 실험영화와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의 비중이 굉장히 커지고 있는데, 그것은 나라마라 관객들의 특성과 전시 공간의 특성 그리고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를 직접 관리하는 큐레이터의 선택으로 인한 영향이지 않을까 한다. 유럽에서도 실제로 많은 관련 기술자들이 노력한 결과 오늘날엔 오히려 어떤 콘서트를 보는 것보다 뮤제움을 방문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마치 더 좋은 커피 혹은 새로운 케익을 먹으러 가는 것과 같은 익숙한 느낌이다. 독일에는 각 도시마다 1년에 한 번씩 뮤제움의 밤이라는 축제가 있다. 그 하루 동안 독일의 각 도시 사람들은 그 도시에 속한 모든 뮤제움을 15유로 티켓으로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보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그 시간 안에 그 가격에  3군데 정도는 볼 수 있었는데 그런 행사를 하는 것 조차 일반 국민들에게 열려있고 

 

 

2017년, 독일의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 시즌 14 <documenta 14>에서 구석진 한편에서 그의 작품 전시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4년전이다. 내가 그 당시 방문했을 때 나는 다른 작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메카스의 작품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줄은 어마어마했다. 그때가 살아있었던 독일에서 마지막 전시였지 않았을까 한다. 그 전시를 보는 것을 당시에 포기했었던 사실이 지금에서야 후회스럽다.  하루 만에 새벽기차를 타고 왕복했던, 그 날 중에 2시간 동안 밤베르크에서 추위에 떨며 문닫힌 중앙역에서 혼자서 기다린 추억이 생각이 난다. 당시엔 얼마나 무서웠던지, 정말 어떤 경험이든 추억이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사진 1 출처, www.faz.net/aktuell/feuilleton/buecher/wie-jonas-mekas-new-york-in-seinen-tagebuechern-sieht-16733730/jonas-mekas-immer-auf-dem-16734334.html

 

사진 2 출처, www.port-magazine.com/film/at-work-jonas-mek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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